2002년 6월 11일자 중앙일보를 보면, 디젤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를 논의하는 '디젤차 공동위원회'의 결정이 미뤄지고 있어 해당업체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속을 태우고 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속을 태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디젤차의 공해 총량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으라'는 환경단체의 요구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현대차 관계자가 "환경부가 환경단체 눈치를 살펴 법규 시행 한 달을 앞둔 시점에서 공동위원회로 책임을 넘기는 바람에 배기가스 문제가 다시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에는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2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법규를 시행 한 달을 앞두고 이제사 맞추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쪽은 환경부가 아니라 자동차 제작사(그것도 일부 자동차 제작사로,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동차 제작사 들의 입장도 서로 다릅니다.)인데, 그나마 보다 현실적인 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하는 환경부를 매도(?)하는 것을 보니, 환경부가 불쌍합니다.
  현대차측은 "국내에서 판매가 중단되면 월 1만대에 달하는 수출차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는데, 이쯤 되면 완전히 '물에 빠진 것을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게 보이는군요. '수출차 판매에 악영향' 운운은 아마도 싼타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대차는 현재 싼타페를 월 2만5000대 생산해 이 중 6000대를 내수판매하고 나머지는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2002.5.14 매일경제)>>
<<현대차에 따르면 싼타페는 지난 4월 수출된 1만 3,054대 대부분이 미국시장에 팔린 점을 감안...(2002.5.15 서울경제)>>
등의 기사를 종합해보면, 싼타페는 국내 내수보다는 수출이 많고,  또 수출은 대부분 미국시장으로의 수출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내 판매가 중단되면 수출차까지 지장을 받는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미국수출차량은 모두 가솔린차량입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경유차량은 단 한 대도 미국에 수출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내 판매가 중단되면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내수용 대신에 수출용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 수출에는 더 좋은 일이 아닌가요?
  이런 식으로 이해당사자가 전문지식으로 포장하여 여론을 오도하는 것에는 대중매체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도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일보의 아래 두 사설을 비교하면 그런 느낌을 '팍팍'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설] 살인적 수도권 대기오염
(2002. 3.29)

[사설] 디젤차 판매중단 안된다.
(2002. 5. 6)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의 대기오염은 실로 살인적이다. 건강에 치명적인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에 대한 측정자료가 이를 말해준다.
OECD국가와 비교할 때, 미세먼지는 4배나 많고 질소산화물은 1.5배가 높다. 지방이나 외국에서 서울을 찾아 온 사람들은 호흡곤란을 하소연 한다. 수도권의 공기를 이대로 두고 선진국을 꿈꿀 수 없고, 삶의 질을 말할 수 없다.
마침 환경부가 ‘푸른 하늘 21’이라는 수도권 대기오염 대책을 마련하여 27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10년 계획으로 2012년 말까지 서울 하늘을 OECD국가 평균 수준으로 깨끗하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목표 자체는 참으로 바람직하다. 시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걱정이다. 왜냐하면 이 계획의 핵심은 배출허용 총량제인데, 정부의 실천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자동차 발전시설 공장 등의 오염물질 배출을 의무적으로 삭감해야 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 기업과 소비자들이 적잖은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일례로 가장 심각한 오염원인 경유차 배기가스를 생각해보자. 총량제가 성공하려면 경유 엔진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든가 퇴출시켜야 한다. 그러나 자동차 제조업체와 소비자들은 저렴한 경유값을 올리는 것을 한사코 반대할 것이다. 또 재경부나 산업자원부가 소비자보호라는 명분을 등에 업은 업계의 압력을 극복할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푸른 하늘 21’계획은 경제부처의 합의를 도출하고 범정부 차원의 실행의지가 전제돼야 한다. 대기오염에 대한 규제는 산업정책과 세제상으로 이익과 불이익이 확연하게 확립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지키고 소비자도 따라올 것이다. 값을 치르지 않고 맑은 공기를 얻을 수가 없다.

오는 7월부터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이 시행됨에 따라 다목적 7인승 차량가운데 일부 차종이 판매중단 위기에 몰리게 됐다. 새 시행규칙은 다목적 7인승 차량가운데 차체 아래에 뼈대(프레임)가 없는 차량에 대해서는 승용차 배기가스 규제를 적용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같은 7인승 디젤 차량이라도 프렘임이 있는 쏘렌토, 렉스턴, 테라칸등은 승용차가 아닌 것으로 분류돼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를 받지 않고 프레임이 없는 싼타페, 트라제, 카렌스등은 승용차로 분류돼 판매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만약 시행규칙이 그대로 시행되는 경우 일부 차종의 생산중단 또는 감산이 불가피해져 부품업체의 도산등 자동차 업계에 상당한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감안해 업계에서는 디젤승용차에 대해 완화된 배기가스 기준이 적용되는 2004년 이후로 시행규칙의 시행을 유예해줄 것을 건의했으나 부처간의 이견 등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은 현행 법규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규제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이번 시행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디젤승용차에 대한 배기가스 규제기준이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없는 엄격한 기준이다. 환경보호도 중요하지만 선진국들도 시행하지 않는 엄격한 규제를 만들어 디젤자동차 판매를 중단시킨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동차 산업발전을 저해하고 수출전략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며 에너지 절약정책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보다 환경규제가 철저한 유럽국가들의 경우 승용차의 절반정도가 디젤 승용차일 정도로 디젤 승용차 보급이 일반화 됐다. 에너지 절약등을 목적으로 디젤 승용차 개발을 촉진함으로써 디젤엔진 기술이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은 우리 처지에서 선진국보다 엄격한 배기가스 기준을 만들어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한 디젤 승용차 판매를 막는다는 것은 국가경제에 손실이 너무 크다. 특히 이번 시행규칙 시행으로 판매가 중단되는 싼타페의 경우 미국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대표적인 수출 차종이다. 차량의 용도가 같고 성능,크기, 모양등이 비슷한 차량에 대해 프레임 유무를 가지고 어떤 차량은 판매가 가능하고 어떤 차량은 아예 판매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도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산업활동도 중요하다. 새 시행규칙으로 판매가 중단되는 일부 차종이 대기오염의 주범은 아니다. 부처간의 협의를 통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카즈앤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