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부 독일의 한 조그만 도시에서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지프에 치여 숨진 교통사고가 있었다. 숨진 어린이의 아버지는 지프차의 파트너 보호를 위한 수동안전도를 문제삼아 자동차회사를 제소했다.

유치원에서 혼자 귀가하던 다섯 살짜리 어린이는 지프와 정면충돌했는데, 그 때 지프는 시속 10km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충돌 후 어린이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6시간만에 숨을 거뒀다. 지프 앞에 장착된 강력한 쇠파이프로 만든 보조범퍼(일명 캥거루범퍼)에 머리를 부딪쳤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물론 보조범퍼에선 충돌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사고는 지프형 자동차의 안전도와 보행자, 특히 어린이 안전에 관한 문제로 전 독일이 한바탕 몸살을 앓는 기폭제가 됐다.

`파트너 보호개념`이란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신은 물론 상대방의 안전도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자동차의 안전도는 크게 적극적 안전도(active safety)와 수동적 안전도(passive safety)로 나눈다. 간단히 요약하면 적극적 안전도란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 수동적 안전도란 교통사고 후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지칭한다.

자동차에 국한시키면 ABS나 앤티 슬립 컨트롤(Anti Sleep Control) 등이 액티브 세이프티에 해당되고, 에어백이라든지 안전벨트, 도어 임팩트바 등은 패시브 세이프티에 속한다. 수동적 안전도는 다시 또 운전자 자신에 대한 안전도와 상대방에 대한 안전도로 구분된다.

이 처럼 안전도 개념에서 대형차와 소형차, 자동차와 자전거 및 오토바이, 자동차와 보행자 등이 충돌했을 경우 상대적으로 보호장치가 미약한 약자에 대한 보호장치가 바로 파트너 보호개념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의 앞범퍼를 플라스틱이나 우레탄 등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 보행자나 자전거 등과 충돌했을 때 충돌에너지를 흡수하도록 함으로써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까지도 보호하자는 것이다.

자동차와 보행자 사이의 교통사고인 경우, 운전자는 거의 다치지 않지만 보행자는 대부분 상해를 입게 된다. 때문에 보행자의 치명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려된 파트너 보호개념은 비단 보행자뿐 아니라 대형차와 소형차의 충돌에서도 대형차에 적용된다. 방탄장치를 한 대형 벤츠와 경차가 충돌한다면 어느 차에 탄 사람이 다칠 확률이 높은 지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매우 불합리한 비교라고 할 지 모르지만 교통사고는 매우 불평등하면서도 불균등하게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다.

실제 도로상황에서는 언제라도 트럭과 승용차가 정면충돌할 수 있고 경차와 버스가 맞부딪칠 수도 있다. 같은 승용차라 해도 등급에 따라 다르므로 충돌속도가 같을 경우 상대적으로 안전장치가 많이 있거나 중량이 무거운 대형차가 소형차에 비해 더욱 안전한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대형차는 대형차를 탄 운전자와 승객의 안전은 물론 소형차와의 충돌에서 가능한 한 소형차의 승객과 운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그런데 이른바 오프로드를 위한 지프형 자동차는 이 같은 상대를 위한 배려는 커녕 오히려 무지막지하게 생긴 쇠파이프로 엮은 보조범퍼를 장착, 자기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상대는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극성 마니아들은 쇠파이프로 된 보조범퍼는 물론 심지어는 어느 특정 업체 지프의 이미지로 사용되는 코뿔소의 뿔을 무식하게(?) 달고 다니는 걸 보면 지독한 개인주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금속으로 만든 날카로운 짐승의 뿔은 정면충돌 시 보행자나 자전거 혹은 오토바이를 탄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흉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지프형 자동차의 보조범퍼에 장착한 날카로운 장식품이나 코뿔소의 뿔은 사람과 직접 충돌했을 때 보통 어른의 가슴에 닿게 되고, 어린이는 직접 머리를 찌르게 된다. 일반 승용차와는 달리 지프는 튀어나온 앞부분과 차체의 지상고가 높아서다.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그저 자기 차에 멋을 내기 위해 프론트에 코뿔소의 뿔을 달았다면 다른 방법으로 멋을 내기를 당부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뿔을 계속 달고 다닌다면 그는 부도덕의 차원을 넘어 잠재적인 살인자다.

좋은 자동차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벤츠도 보닛 위에 설치하던 자사의 엠블럼인 세 꼭지 별을 이제는 라디에이터 그릴에 새겨 넣는 추세다. 롤스로이스의 천사도, 재규어의 달리는 표범도 모두 보닛의 프론트에서 내려 왔다. 혹시 있을 수도 있는 보행자와의 사고에 대비해서다. 한 때 유행했던 각종 엠블럼들이 보닛 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명차라고 불리는 그들로부터 흉내낼 건 보행자에게 위험한 엠블럼 달기가 아니라, 교통사고가 났을 때 안전장치가 없거나 미약한 보행자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정신과 그에 합당한 안전장비 설치를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자세가 아닐까.

명차 모두가 한결같이 앞에 붙인 엠블럼이 사람에게 조그마한 찰과상이라도 입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은빛천사도 롤스로이스에서 가차없이 내리는 마당에 우리는 오히려 날카로운 짐승의 뿔이나 장착하고 똥색 찬란한 엠블럼이나 달고 있다면, 지금 우리의 파트너 보호에 대한 자동차 수동안전도의 의식수준은 그리고 자동차의 안전에 관한 문화수준은 그야말로 바닥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 이경섭 : 베를린 공과대학 자동차공학과 박사과정]
Posted by 카즈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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