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이제 두달여 남겨 놓고 있는 시점에 (주: 작성일은 99년11월입니다) 7~10인승 LPG승합차가 갑자기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에서도, 그동안 승합차로 분류되어 왔던 이 차종이 2000년 1월 1일부터는 승용차로 차종분류가 바뀌게 되므로, 승용차에는 LPG를 허용할 수 없다는 당초의 방침을 번복하는 등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인상이다. 혼란(?)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재정경제,건설교통,환경부 등 여러 부처가 관련되어 있고, 민간부문에서도 자동차업체,정유업체,그리고 LP가스수입업체들이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 혼란의 본질을 알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소비자들도 문제의 본질을 알고, 올바른 정책방향이 설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환경오염을 저감할 목적으로, 89년에는 15인승이하 승합차에 대해 LPG의 사용을 허용하였고 95년에는 역시 동일한 목적으로 모든 승합차 및 화물차에 대하여서도 LPG의 사용을 허용하였다. 그런데,96.12월에 건설교통부의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7~10인승 승합차가 2000년 1월1일부터는 “승용차”로 분류되게 되었다. 따라서, 승용차에는 LPG사용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이 7~10인승 승합차는 2000년이후에는 LPG를 사용할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싼 연료비용에 의한 저렴한 관리비때문에, IMF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LPG 레저용차량을 2000년부터는 더 이상 생산,판매할 수 없게 되자, 자동차업계에서는 투자비,수출감소 등의 이유로 반발(?)하게 되었고, 3~4개월씩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계약자들도 불안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우선 “개정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을 1년 동안 유예하고, 그 사이에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공청회를 통하여 발표된 ‘자동차LPG사용규제 개선방안’을 살펴보면 주요 골자는
- 7~10인승 승합차의 승용차로의 구분을 1년 연기
- 승합차의 LPG사용과 관련된 문제는 기본적으로 에너지가격구조가 왜곡되어 왔기 때문으로, 유예기간 중에 유종별 가격구조 개선방안을 수립,시행
- 유종별로 가격구조를 선진국수준으로 합리화하는 시기에 맞추어 차종별 연료사용규제를 철폐
- 유종별 가격구조의 개선에 따른 세수 증대분을 활용하여 영업용택시,버스,화물자동차 등에 대한 비용상승분을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
등이다.
짧은 시간동안 만들어졌음에도 개선방안의 방향은 제대로 설정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정유업체만이 개정시행규칙의 예정대로의 시행을 요청하고 있고, 다른 관련부문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개정시행규칙의 시행을 1년 유예한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이미 3년 전에 공표된 것으로, 지난 3년 동안 전혀 검토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졸속행정의 일례가 될 수 있다. 3년이라는 기간은 유예기간보다 3배나 되는 기간인데 그동안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것은 무사안일 행정의 증거이다. 물론 3년전에 지금과 같이 LPG레저용차량이 많이 팔릴 줄은 몰랐겠지만,그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국가행정은 미래를 반영해야지, 사후약방문격으로 항상 뒷북만 치면 곤란하지 않는가? 또한 1년유예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싼 연료비의 차량을 구입할 수 있겠지만, 공익의 형평성을 생각하면,이것을 무조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중산층이상이 구입하는 레저용차량에 금전적 혜택을 1년간 더 연장해 주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1년유예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쪽은 자동차업체일 것이다. 이번 소란동안 자동차업체들은, LPG허용이 중단되면 막대한 개발투자비를 보전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시장이 성장해 가고 있는 다목적용차량의 개발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문제가 있다. 신차개발은 통상 3~4년이 걸린다고 업체 스스로도 말하고 있다. 이번 건의 경우에, 신차개발 초기에 이미 법규정의 개정방향이 설정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은 개정시행규칙의 내용을 개발계획상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는데 왜 이제와서 투자비 운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목적차량의 수출증가를 위해서 투자비보전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국내에서 LPG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해외에서는 LPG가격이 우리와 비슷하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LPG차량의 비중이 미미하다. 따라서 LPG차량을 수출해서 매출을 올릴 수는 없으니까, 수출용 차량을 별도로 개발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수출용 차량을 많이 팔아서 투자비를 보전하면 되지 않는가? 애당초 개발계획이 그렇게 마련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국내에서 LPG를 허용하지 않으면 투자비가 보전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나아가서 법적으로 제작,판매가 허용되지 않는 시점에 생산하겠다고 개발해온 저의(?)가 의심스럽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고 용감하면 돈번다.
둘째, 향후계획에 명확한 목표시한이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간단치 않아서 내년 1년을 다 소비하고도 별다른 진전이 없으면, 내년 이맘때쯤 또 한번 유예할 것인가? 그때가서 우리도 열심히 노력은 했는데 마무리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공통의 관심사로 부각이 되었으니, 모두 바싹 다가 앉아 에너지 가격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시한을 정해 놓고, 정해진 시한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차종별 연료사용규제는 하루 빨리 풀어야 한다. 연료사용규제는 사실 국내엔진기술의 발전을 저해한 요소가 되어 왔다. 가솔린차량과 큰 차이가 없는 LPG차량의 판매가 수월한 상황에서, 누가 많은 연구개발투자비를 들여 엔진기술을 개발하겠는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는 가솔린엔진자동차와 디젤엔진자동차가 대부분이다. 배기가스규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술개발이 요구되는 디젤자동차와, 현재의 기술로도 배기가스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 LPG자동차 중에서 무엇을 택하겠는가? 향후의 자동차기술발전의 지향점은 “안전,환경,정보”이다. 애석하게도 이들 기술에 대한 국내 자동차회사들의 투자는 선진국메이커와 비교하면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상황이라면 3~4년후부터는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자동차수출은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특히, 향후 유럽시장을 위해서는 진보된 디젤엔진기술의 확보는 절대적이다. 따라서, 자동차업체들은 현실에만 안주하여 안이하게 당장의 판매에만 급급하지 말 것이며, 정부에서도 우리나라 경제에 자동차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생각해서라도 자동차회사들의 기술개발을 선도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이상에서 LPG 사용규제 개선방안의 문제점을 살펴 보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선방향은 늦었지만 제대로 설정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모처럼 관련부문들간에 합의된 개선방안이 제대로 그리고 하루 빨리 시행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