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대 총선이 가장 큰 화두였던 지난 3월말, 총선관련 뉴스보다 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사건(?)은 현대그룹 경영권 다툼이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편의 헐리우드식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그 다툼을 보고 있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던 의문의 하나는 ‘왜 이 시점에 MK가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높은 곳에 계신 분(?)들의 속내야 민초들이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마는, 지난 주에 아주 의미있는 기사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의미있는 기사는 매일경제신문에서 거론한 ‘현대증권회장 인사파동이 불거졌을 당시 MK측이 대우차 인수와 연결, 증권을 탐냈다는 해석’입니다. 즉, 현대자동차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한 자금을 동원하기 위하여 현대증권을 포함하는 현대계열금융사 들을 휘하에 두려다가 경영권다툼에 휘말리게 된 것 아니냐는 시각인 셈이죠.
그러면, 현대자동차에서는 전면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한 번 해본 것일까요? 아니면,대우자동차를 인수하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절대절명의 위기감에서 부딪혀 본 것일까요?
21세기의 자동차가 만족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는 크게 봐서 안전과 환경으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이 안전과 환경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현재에는 계산이 되지 않을 만큼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요즘 한창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세계 자동차업체 들의 제휴,합병이 모두 이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로 경쟁사의 입장에 있었던 GM과 도요타가 제휴를 하는 등의 변화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안전기술에 있어서, 운전자 에어백이나 조수석 에어백과 같은 소극적인 개념의 안전장치는 이제 더 이상 안전기술로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에어백 시스템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한 판단을 하도록 요구하는 Smart Air-bag 시스템이나, 유럽에서 2004~5년쯤에 규제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보행자보호시스템은 이제 전세계적인 요구조건이 될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이에 필요한 기술은 모두 외국업체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 자동차업체의 원천기술 개발은 기대할 수 없으며,차량탑재를 위한 시험경비만도 수 백억원이 될 것입니다.
환경기술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미국에서는 가솔린자동차의 환경규제를 더욱 더 강화하고 있고,유럽에서는 소형디젤자동차의 수출만을 허용하겠다는 듯이 CO2배출을 엄격하게 조절하고있습니다. 현재 전기자동차,하이브리드자동차,연료전지,전자식디젤엔진 등에 대한 기술은 미국,유럽,일본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EU와 체결한 CO2협약과 미국의 차기배출가스규제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2003년 무렵부터는, 자동차 주요 내부시스템은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외국부품업체에게 로얄티를 지불하고 들여온 후, 자동차외판과 조립하여 다시 외국으로 수출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향후 한국의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제작사라기 보다는 조립회사라는 명칭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진행된다면, 국내 자동차 제작사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은 국내시장이 될 것입니다. 물론,시장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내수기반이 없으면 더욱 힘든 전쟁이 되겠지요. 현대와 기아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국내 시장점유율 70~75%는 결코 양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대우자동차가 현대가 아닌 외국업체에 인수된다면, 국내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몇 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현대의 입장에 서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우자동차가 외국업체에 인수되기보다는 없어지거나(?),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 유지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까요? 대우자동차가 없어질 수는 없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지 않겠습니까?
이미 외국차수입도 개방된 상황에서, 인위적인 시장 분할에 의한 시장점유율의 유지보다는 적극적으로 고객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 향후 생존에 더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입니다.
“경쟁은 항상 고객들에게 이로운 것” 을 실천해 보일 용기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