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이야기
자동차 엔진의 발달사는 좀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메이커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맥을 같이 한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은
모두 앞선 엔진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명성을 얻어 왔다. 최근 들어서는 성능이 좋을 뿐 아니라
환경을 해치지 않고 연비까지 뛰어난 엔진 개발에 기술력을 모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승용 디젤 엔진은 미래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요즘은 엔진 만들기가 참 힘들다. 예전에는 힘 좋고 맛깔 나는 느낌의 엔진을 만들기만 하면 애호가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엄격해진 배출가스기준도 만족시켜야 하고, 소음계로는 기준 이하의 소음을 내면서도 사람 귀에는 즐거운 사운드를 들려주어야 한다. 성능은 뛰어나면서 다루기 힘들어서도 안 된다. 경제적이면서 내구성도 좋아야 한다.
이렇듯 고객들의 입맛은 까다로워지고 정부의 규제는 엄격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 이들은 개성이 강한 차를 소수의 고객들을 위해 한정 생산하던 백야드 빌더들일 것이다. 연구 및 시험 설비, 그리고 투자할 자본이 한정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엄격한 환경규제가 넘기 힘든 장벽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과 기술력이 충분한 대규모 메이커에게는 유리한 기회가 되었다. 이들은 여러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 새로운 엔진 구성과 제어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던 것이다.
엔진 기술 개발에 가장 큰 자극제가 되었던 것은 미국의 환경규제 고시였다. 이 규제조치는 앞으로의 배출가스 및 소음 규제치를 예시해 미리부터 자동차 메이커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 여유를 두었다. 이에 대비한 메이커들의 준비과정은 대부분 새로운 엔진 관련 기술의 개발과 더욱 완벽에 가까운 제어시스템의 최적화에 집중되었다.
그러면 먼저 세계의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이 환경보호와 고객만족을 위해 피땀 흘리며 개발한 첨단 기술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엔진의 밸브 기구
DOHC니 4밸브니 하는 이야기는 이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어지간한 엔진들, 심지어는 RV용 엔진과 디젤 엔진조차도 4밸브 DOHC 메커니즘을 심심찮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승용차용 엔진은 실린더 헤드에 캠축 한 개를 달고 실린더마다 2개의 밸브, 즉 1개의 흡기밸브와 1개의 배기밸브를 사용하는 SOHC 2밸브 방식을 썼다. 이 방식은 밸브기구가 간단할 뿐만 아니라 실린더 헤드를 작게 설계할 수 있고 엔진의 중저회전 영역에서 효율이 뛰어나 널리 사용되었다.
SOHC 2밸브 방식 엔진의 한계는 고회전 엔진 영역이었다. 이 엔진으로는 높은 출력을 추구하는 고회전 엔진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저회전 영역에서는 충분히 열린다고 생각했던 밸브가 고회전 영역에서는 부족했던 것이다. 흡배기 포트의 면적을 넓게 하기 위하여 밸브를 더 크게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밸브가 커지면 무거워지고 무거운 밸브는 움직일 때 관성이 커 캠축과 밸브 스프링을 더욱 강화해야만 했다. 즉, 밸브뿐 아니라 캠축과 밸브 스프링도 크고 무거워져야 했던 것이다. 그 결과 고회전 영역에서는 밸브가 정확한 시간에 여닫히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DOHC와 멀티밸브 시스템의 등장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 첫 번째는 강한 힘으로 밸브를 확실하게 여닫을 수 있도록 밸브를 누르는 캠축을 두 개 사용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DOHC(Double Over Head Camshaft)의 사용이다. 이 방식은 흡기밸브와 배기밸브를 별도의 캠축으로 작동시키므로 밸브 하나의 크기가 커지고 무거워지더라도 꽤 높은 회전수까지 밸브 타이밍을 정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기아가 조립 생산했던 피아트 132가 이런 방식을 썼다. ‘큰 밸브 한 개를 달지 말고 작은 밸브 여러 개를 달면 어떨까?’ 아마 누군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던 모양이다. 작은 밸브는 가볍다. 따라서,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관성을 덜 받으며 고회전에도 정확한 밸브 타이밍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멀티밸브 시스템이다. 멀티밸브 시스템은 흡기밸브 2개와 배기밸브 1개를 사용하는 3밸브 시스템과 흡기와 배기밸브를 각각 2개씩 사용하는 4밸브 시스템으로 시작되었다.
3밸브 시스템은 주로 캠축이 하나인 SOHC 시스템과 조합되어 사용되었다. 즉, 밸브의 개수가 많지 않으므로 1개의 캠축으로도 충분히 작동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엔진의 전체 회전영역에 걸쳐 무난한 흡기 충진 효율을 발휘하므로 성능 상으로도 무난했다. 그 결과, DOHC 4밸브 시스템에 비해 작고 단순한 실린더 헤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개선된 흡기효율을 얻을 수 있으므로 승용차용 엔진에 많이 사용되었다.
요즘 대부분의 엔진들은 4밸브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이 방식은 주로 연소실의 왼쪽으로 들어온 흡기가 오른쪽으로 나가는 크로스플로 방식을 따른다. 넓어진 밸브개방 면적과 함께 연소실을 관통하는 흡배기의 방향으로 고회전 영역에서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다. 이 방식은 DOHC와 SOHC 모두에 자유롭게 쓰일 수 있다. 특히 DOHC 시스템을 함께 사용하면 좀 더 큰 밸브를 좀더 높게 열 수 있으므로 고회전 영역에서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저회전 영역에서는 토크가 부족해지는 경향이 있고 실린더 헤드가 복잡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DOHC 4밸브 방식이 요즘 엔진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여기서 더욱 발전된 시스템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1) 가변 밸브 시스템
앞서 이야기했듯이 DOHC 4밸브 시스템은 고회전 영역에서는 우수하지만 저회전 영역에서는 토크가 부족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시스템이 바로 가변 밸브기구이다.
먼저 밸브 타이밍, 즉 밸브가 여닫히는 시기와 밸브의 리프트(밸브가 열리는 정도)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므로 우선 고회전 설정과 저회전 설정만을 비교해보자. 고회전 영역에서는 밸브가 열려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므로 가능한 한 미리 흡기밸브를 열고 늦게 닫아야만 혼합기가 실린더 내부로 들어오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 배기밸브 역시 가능한 한 미리 열었다가 늦게 닫아야만 연소가스를 충분하게 실린더 밖으로 배출시킬 수 있다. 밸브도 최대한 높이 열어서 흡배기가 통과할 길을 넓게 열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설정으로 만들어진 엔진은 저회전 영역에서 문제가 있다. 밸브가 열려 있는 시간을 늘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오버랩, 즉 4스트로크 엔진의 배기 행정과 흡입 행정 사이에 흡기밸브와 배기밸브가 함께 열려 있는 현상이다. 이 오버랩이 증가하면 실린더의 밀봉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연료 혼합기가 배기가스에 휩쓸려서 그대로 배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 결과 공회전이 불안해지고 저회전 영역에서의 토크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오염물질이 많이 배출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경기용 엔진들은 공회전 속도가 일반 자동차보다 매우 높은 1천500~2천rpm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저회전 영역과 고회전 영역에 모두 이상적인 밸브 타이밍과 리프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판용 4밸브 엔진은 양쪽의 중간적인 위치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다. 즉, 무난하지만 우수하지는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밸브 타이밍과 리프트를 조절할 수 있는 가변 밸브 기구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가변 밸브 기구 혼다 VTEC
가변 밸브 기구의 대명사는 1989년에 혼다가 선보인 VTEC(Vri-able Valve Timing & lift Electronic Control)이다. 이 방식은 저회전 영역과 고회전 영역에서 별도의 캠을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저회전 영역에서는 밸브를 늦게 그리고 낮게 여는 캠을 사용하다가 일정 회전수가 넘어서는 순간 밸브를 미리 높이 여는 캠을 유압에 의해 작동시킨다. 고회전 캠이 밸브를 누를 때 저회전 캠은 밸브와 미처 만나보지도 못한 채 스윙하면서 지나가므로 간섭은 전혀 없다.
VTEC은 밸브 타이밍뿐만 아니라 밸브 리프트를 함께 변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본격적인 가변 밸브 기구로 인정받고 있다. 즉, 저회전 토크와 고회전 출력 상승에 가장 확실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캠의 전환 시점에서 출력이 급격하게 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운전자가 차를 다루기가 까다로워지고 캠 기구가 복잡하고 무거운데다 충격에 의해 손상될 우려, 즉 내구성 부문에서 다른 가변 밸브 기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취약한 점 등을 지적 받고 있다.
혼다 VTEC을 제외한 다른 메이커의 가변 밸브 기구, 즉 BMW의 더블 바노스(Double Vanos)와 포르쉐의 바리오 캠(Vario cam), 도요다의 VVT-I, 메르체데스 벤츠, 아우디 등의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은 밸브 리프트를 조절하지는 않는다. 밸브 타이밍을 조절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기본적인 특성은 같다. 즉, 밸브 타이밍을 VTEC처럼 한순간에 전환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대신 엔진 회전수와 부하도에 따라서 연속적으로 변경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엔진 회전수에서도 최적의 밸브 개폐시기를 얻을 수 있고 출력이 부드럽게 변하므로 운전자는 안심하고 운전할 수 있다. 또한 캠 기구가 일반 DOHC와 마찬가지로 단순하기 때문에 회전 관성을 작게 받을 뿐만 아니라 내구성도 높다. 현재 BMW를 비롯한 몇몇 메이커의 가변 밸브 시스템은 흡배기밸브의 타이밍을 모두 조절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되어 있다
2) 아우디의 5밸브 시스템
밸브 숫자가 4개보다 많은 엔진을 제작한 회사는 아우디가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 혼다는 모터사이클 엔진에 타원형 피스톤과 함께 기통 당 8밸브 시스템을 썼던 예가 있고 야마하는 양산형 모터사이클용 엔진에 5밸브 시스템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페라리는 F355를 시작으로 해 현재 360 모데나에도 5밸브 시스템을 쓴다.
아우디는 모든 차에 5밸브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이다. 그리고 다른 5밸브 시스템들은 고회전 영역에서의 최고출력 향상에 주안점을 두었지만, 아우디는 또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다. 바로 연소효율의 향상이다.
일반적으로 흡기밸브는 배기밸브보다 크게 설계된다. 즉, 흡기가 원활하게 들어오면서 그 압력으로 배기를 가속시키는 효과도 이용하기 위해 제작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4밸브 시스템은 실린더를 위에서 보았을 때 점화플러그가 한가운데 위치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우디 5밸브 시스템은 작은 흡기밸브 3개와 큰 배기밸브 2개를 사용하므로 점화플러그가 실린더의 한가운데에 놓여진다. 따라서 연소실 구석구석까지 불꽃이 균일하게 전파될 수 있으므로 연소효율이 향상되는 것이다.
3개의 흡기밸브 가운데 중앙의 1개는 나머지 2개와 다른 각도로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흡기가 실린더로 유입되면서 실린더 전체에 균일하게 와류를 형성해 연료와 공기가 더욱 완벽하게 혼합되고 불꽃도 더욱 균일하게 전파될 수 있다. 그만큼 연소효율이 향상되고 연료 경제성과 토크, 출력이 오르는 이득을 얻게 된다.
아우디는 5밸브 메커니즘을 롱 스트로크형 엔진에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롱 스트로크 엔진은 중저회전 영역에서 큰 토크를 발휘하는 엔진의 대명사다. 그리고 5밸브는 고회전 고출력을 기본적으로 추구한다. 이 두 가지를 접목한 결과 아우디는 폭넓은 토크밴드와 원활한 고회전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밸브가 많아진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흡기밸브로 흡기를 유도하는 흡기 가이드의 구조가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밸브가 열렸을 때 밸브 앞에서 와류가 발생해 흡기가 원활하게 들어가지 못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데, 밸브의 수가 많을수록 그 설계가 까다롭고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밸브 기구가 복잡해진다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단점이다. 이 같은 멀티밸브 시스템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회사는 메르체데스 벤츠였다.
3) 메르체데스 벤츠의 3밸브 시스템
1998년 메르체데스 벤츠는 그동안 사용하던 직렬 6기통 엔진을 포기하고 V6 엔진을 새롭게 선보였다. 이 엔진의 가장 큰 특징은 DOHC 방식과 기통 당 3밸브 시스템을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기통 당 2개의 점화플러그, 즉 트윈 스파크 시스템을 썼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벤츠가 이 같은 시스템을 승용차용 엔진에 사용한 이유는 최고출력이나 풍부한 토크 때문이 아니었다. 고출력 고토크는 단순히 결과적으로 얻어진 산물에 불과하다. 그들이 목적으로 삼았던 것은 작은 배출가스와 높은 열효율이었다.
벤츠는 승용차용 엔진이 만들어내는 배출가스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그 결과 시동 직후에는 배출가스가 정상작동 온도 때보다 10배 이상 많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동 직후의 배출가스를 줄이는 방법으로 촉매정화장치를 정상작동 온도까지 신속하게 가열시키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벤츠 엔지니어들의 결론이었고, 이에 따라 흡배기 계통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들은 4밸브 시스템이 공회전 때 지나치게 높은 흡배기효율로 인해 엔진의 워밍업을 더디게 만든다고 판단했다. 촉매정화장치를 가능한 한 엔진에 가깝게 설치하는 것과 함께 벤츠는 DOHC 3밸브 시스템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3밸브 시스템은 저회전 영역에서 4밸브 시스템에 비해 2배 가까이 빠르게 엔진을 워밍업시킬 수 있어 초기의 배출가스를 줄여준다. 또 트윈 스파크 시스템은 강력한 점화력으로 완벽에 가까운 연소효율을 만들어냈다. 높은 토크와 고출력은 더욱 강해진 시스템에 따라 함께 얻어진 것이다.
4) 미래형 밸브 시스템
캠이 열었던 밸브를 닫는 힘은 밸브 스프링이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스프링을 새로운 소재로 제작하거나 더블 스프링을 사용해 리턴 속도를 올리는 방법이 고회전용 엔진을 제작하는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미 F1 레이스용 엔진 등에서는 밸브 스프링을 사용하지 않는다. 스프링은 일정 속도 이상으로 작동하면 더 이상 밸브를 신속하게 누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밸브가 미처 닫히기도 전에 캠이 밸브를 다시 여는 밸브 서지(valve surge)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현대적 F1 엔진은 스프링 대신 압축공기로 밸브를 닫는 압축공기 시스템(pneumatic valve system)을 사용하고 있다. 그 덕분에 분당 1만9천 회전에 육박하는 초고회전 엔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한 단계 앞서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아예 캠을 없애는 시스템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밸브 기구는 모든 실린더의 밸브 타이밍과 리프트가 같다. 가변 밸브 시스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연료 분사량과 시기, 그리고 점화 시기는 이미 실린더마다 별도로 제어되고 있다. 만약 밸브 타이밍과 리프트도 실린더마다 독자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엔진의 효율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이를 위해 등장한 것이 솔레노이드 방식의 밸브 기구이다. 솔레노이드 액추에이터를 이용해 전자석의 힘으로 밸브를 작동시키면 캠이나 스프링 등의 복잡한 기구 없이 모든 밸브를 원하는 시간에 정확하게 작동하도록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식은 아직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연소실의 높은 압력을 이기는 큰 힘을 내고 고열에도 견딜 수 있는 솔레노이드를 작게 만들기가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만들어낸다고 해도 실용화가 힘들 정도로 매우 비싸질 것이 뻔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정도 용량의 솔레노이드를 작동시키려면 전기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동력보다 솔레노이드 방식의 밸브를 사용해 얻어지는 엔진의 효율상승 부분이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좀더 효율이 좋은 솔레노이드를 개발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가까운 미래에 실현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시스템이다.
2. 다채로운 실린더 배열
유럽 메이커들은 대 배기량 엔진을 설계할 때 이미 실용화된 엔진을 응용하는 경향이 크다. 그 대표적 예가 BMW의 12기통 엔진이다. 지금은 5천400cc지만 처음에는 5천cc였다. 이 엔진은 BMW의 대표적 엔진이었던 스몰 식스 2천500cc 직렬 6기통 엔진 2개를 붙여서 만들었다. 즉, 실린더 헤드를 비롯한 연소실 설계는 이미 최적화되어 있으므로 불필요하게 비용을 들이지 않고 새로운 엔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12기통 엔진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엔진제어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BMW는 글자 그대로 2개의 엔진을 얹기로 했다. 즉, 좌우 실린더 뱅크가 별도의 흡기량 센서와 컨트롤 유닛을 갖고 독자적으로 제어되는 방식을 쓴 것이다.
아우디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아우디 최초의 프레스티지 세단인 아우디 V8에 얹었던 엔진은 유명한 골프 GTI 16V의 1천781cc 엔진 2개를 붙인 것이다. 배기량도 정확하게 두 배인 3천562cc. 실린더 헤드의 설계는 GTI의 그것과 동일하다.
볼보는 약간 다른 방식을 취했다. 포르쉐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직렬 6기통 3X 엔진을 볼보 960에 처음 얹었는데 이 엔진은 모듈러 엔진이라 불렸다. 필요에 따라서 실린더를 한 개 또는 두 개 제거해 4기통부터 6기통까지 자유롭게 설계를 변경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엔진이었던 것이 그 이유다. 이는 S40의 4기통 엔진, S60과 S70의 5기통 엔진으로 파생되어 갔다.
대 배기량 엔진을 설계할 때 걸림돌이 되는 것이 또 한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엔진의 크기다. 엔진이 커지고 길어질수록 엔진룸의 크기도 커져야 한다. 무리하게 억지로 얹었다 해도 엔진룸 내부의 냉각효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타 주변장치의 배치에도 큰 제약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 전체의 길이에 비해 실내가 좁아지고 엔진이 무거우므로 차체 앞부분에 지나치게 하중이 집중되어 조종성능이 악화되는 등의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공간 절약형 엔진 주도하는 폴크스바겐
이 같은 공간 절약형 엔진의 효시는 구형 비틀이 썼던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이다. 수평대향 엔진은 직렬 엔진에 비해 길이가 짧을 뿐만 아니라 높이도 낮다. 따라서, 좁은 공간에도 설치하기가 쉽다. 그리고 포르쉐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엔진의 높이가 낮으므로 차 전체의 무게중심을 낮춰주는 것도 이득이다. 무게중심이 낮아지면 차의 조종성능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이득은 마쓰다 RX-7에 쓰이는 로터리 엔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대적 공간절약형 엔진을 주도하는 회사 역시 폴크스바겐이다. 폴크스바겐은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유로움을 아는 차라는 컨셉트로 골프 VR 6를 발표했다. VR 6 엔진은 2.8X의 배기량에도 불구하고 가로엔진 앞바퀴굴림 방식을 사용하는 골프의 좁은 엔진룸에 손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세로배치 엔진일 경우에는 좌우 실린더 뱅크의 각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가로배치일 경우에는 그 각도가 엔진의 크기를 좌우한다. 그래서 VR 6 엔진은 겉으로 보면 직렬 엔진처럼 보이지만 내부구조는 실린더가 15도 각도를 이루면서 번갈아 배치되는 혁신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그 결과 엔진 전체의 길이는 직렬 4기통 엔진과 거의 같고 폭 역시 직렬 엔진에 비해 약간 넓어지는 정도다. 그리고 이 엔진은 실린더 하나를 떼어낼 수 있도록 미리 설계해 모듈러 엔진의 개념도 동시에 쓴 미래 지향적인 엔진이었다.
아우디가 지난해 파리 모터쇼를 통해 선보인 W 12기통 6X 엔진은 VR 6 엔진의 파생작품이다. 이 엔진은 VR 6 엔진 2개를 V6으로 붙인 형태로, 일반적인 V8 4.2X 엔진에 비해 길이가 단 5cm만 커지는 수준이어서 컴팩트한 아우디 A8의 엔진룸에도 여유 있게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직렬 엔진의 토크감과 V형 엔진의 부드러움을 함께 갖춘 것이 장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제작된 W8 배치의 엔진이 현재 폴크스바겐 파사트에도 얹히고 있다.
그 이외에도 폴크스바겐은 4기통 실린더 뱅크를 세 개 붙여서 제작한 W12 엔진을 컨셉트 카 아부스와 부가티 컨셉트카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형식은 중간 실린더 뱅크의 냉각효율 문제로 실용화되기까지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엔진 붙이기의 백미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가까운 미래에 선보일 메르체데스 벤츠의 최고급 럭셔리 세단인 마이바흐는 현재 사용 중인 V12 엔진 두 개를 길이로 붙여 만든 V24 엔진을 얹을 예정이다.
3. 현대의 엔진 기술
엔진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따라서, 한가지 현대적 엔진의 개발 추세를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 GDI 엔진―디젤 엔진 기술에서 출발
GDI 즉, 휘발유 직분사 엔진이 휘발유 엔진과 관련된 첨단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미쓰비시에 의해 개발된 이 기술은 우리나라에서도 현대 에쿠스용 V8 4천500cc 엔진에 쓰이고 해외 여러 나라의 엔진에도 속속 사용되고 있다. 휘발유 직분사 방식은 연료를 실린더 안으로 직접 분사해 실린더 안에서 완벽하게 혼합되어 이상적으로 연소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이다. 따라서 높은 경제성과 함께 고성능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GDI가 사용되기까지는 연소실의 뜨거운 온도와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인젝터를 비롯해 첨단 신소재로 제작되어야만 하는 등 소재 선택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직분사’라는 용어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디젤 트럭 엔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십 수년 전부터 사용된 사례가 있다. 디젤 엔진도 예전에는 밸브 앞에 있는 와류실(swirl chamber)이나 예연소실(pre-combustion chamber)에 연료를 분사하는 간접분사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소재상의 문제가 해결되면서부터 디젤 엔진의 주류는 열효율이 좋은 직분사 방식으로 이동했다.
이렇듯 GDI 휘발유 직분사 엔진은 디젤 엔진의 직분사 방식을 휘발유 엔진에 응용한 시스템으로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다.
2) 커먼레일 방식―휘발유 엔진 기술에서 응용
요즘 새롭게 선보이는 승용 디젤 엔진에는 거의 예외 없이 커먼레일이란 방식의 연료공급 시스템이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현대 트라제 XG와 싼타페에 얹힌 신형 2.0X 디젤 엔진이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방식은 디젤 엔진을 다루던 기술자들에게는 생소한 방식이다. 인젝션 펌프도 없고 인젝터는 연료 레일에 꽂혀 있는 데다 연료압력 조절기는 연료 라인에 붙어있다. 그런데 휘발유 엔진의 메커니즘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전자제어식 연료분사장치를 쓰는 휘발유 엔진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부품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디젤 엔진은 직분사 방식이라도 인젝션 펌프를 중앙에 갖고 있거나 실린더마다 독립형 인젝션 펌프를 갖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인젝션 펌프에서 연료분사 시기, 즉 점화 시기를 조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커먼레일 방식은 인젝터가 마치 휘발유 엔진의 그것처럼 솔레노이드 방식의 인젝터가 엔진 컨트롤 유닛의 명령에 따라 열리면서 연료를 분사하는 것이다.
커먼레일 방식은 최고 1천350바(bar)의 높은 압력으로 연료를 실린더 안에 직접 분사한다. 사실 1천350바는 다른 방식의 디젤 엔진에 비하면 그다지 높은 수치가 아니다. 폴크스바겐 그룹이 V6 TDI 엔진에 사용하는 로터리 방식 인젝션 펌프의 1천850바나 실린더별 독립식 펌프-인젝터(모듈러 펌프 방식이라고도 한다) 방식의 2천100바에 비하면 낮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높을 뿐만 아니라 이 정도 압력으로 분사압력을 조절하므로 엔진의 정숙성이 좋아진다. 정숙성은 승용차용 디젤 엔진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GDI 방식과 커먼레일 방식의 기본적인 원리에는 차이가 없다. 이렇듯 전자제어 기술이 발달하고 엔진의 배출가스 규제가 심해질수록, 연료 경제성이 소비자들에게 크게 중요해질수록 최적의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방향에는 디젤이건 휘발유건 엔진의 종류에 따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4. 에필로그
엔진 얘기를 하면서 한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 우리나라는 왜 디젤 승용차를 제한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법적으로는 우리나라도 디젤 승용차를 제한하지 않는다. 다만, 유럽에서 2005년에 실행될 기준보다도 수십 배 엄격한 전대미문의 배출가스 규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디젤 승용차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디젤 엔진이 휘발유 엔진보다 많이 배출하는 질소산화물(NOx)이나 매연 등이 암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라는 것, 그리고 트럭이나 버스 등으로 인해 세계에서 디젤차의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승용차만이라도 엄격한 규제치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럭이나 버스의 배출가스를 줄이도록 기술지도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디젤 엔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해물질, 즉 일산화탄소나 탄화수소는 휘발유 엔진보다 적게 배출한다. 그리고 연료경제성이 뛰어나 화석 연료를 태우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이산화탄소도 적게 나온다. 이산화탄소는 국내 대기오염 규제에는 들어가 있지도 않다. 정부공식주행연비에 표시가 되지도 않는다. 정부가 규제하고 있는 다른 오염물질은 기술개발을 통해 정화할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는 정화가 되지 않는 물질이다. 나무를 많이 심는 것 이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세계적인 규제를 받고 있다.
또 한가지. 디젤 엔진은 휘발유 엔진에 비해 내구성이 월등하다. 따라서 엔진의 폐기로 인해 발생되는 산업 폐기물도 훨씬 줄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디젤 엔진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유럽 사람들이 자기 건강이 소중하지 않아서 디젤 승용차를 타는 것은 아니다. 디젤 승용차는 경제적이고 오래 탈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토크가 좋기 때문에 운전하기가 편하다. 프랑스는 승용차 두 대 가운데 한 대, 독일은 다섯 대 가운데 한 대 꼴로 디젤 승용차가 운행중이다. 새로운 디젤 엔진을 우리나라 사람들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실용성과 경제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환경 보호 문제까지 해결하는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