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플러와 돈벌이 ■
"마후라"는 일본식 영어다. 발음 좀 한다는 사람들은 '머플러 (Muffler)'라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잘 달리는 차들은 이 머플러가 두 개는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확고부동하다. 과연 그럴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왜 두 개이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맞다. 엔진이 공기와 연료를 적당히 태워서 돌아가는 장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면 빨리 태울 수록 그 출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빨리 태우려면 그 전에 태운 것을 빨리 빼내 주어야 한다. 빨리 빼내 주려면 그 통로가 두 개 또는 그 이상일 수록 좋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4기통 엔진에 배기통로가 4개쯤 사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겠다. 이 때에 배기통로의 끝쪽에는 배출소음을 작게 해 주는 '머플러'가 사용된다.
차 밑쪽을 볼 수 없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좌우 머플러가 두 개 달려 있다면 "와! 내 차와는 다르군"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하다. 그리고 뭔가 엄청난 출력을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실제 배기통로가 두 개가 아니고 일반차량과 같이 한 개를 사용하면서도 끝 부분을 약간 변형해서 두 개의 머플러를 달아 놓았다면?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단순한 치장품 정도의 효과만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요즘 '튜닝 머플러'라는 것을 바꿔다는 사람들이 많다. 차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흡기 튜닝", "배기 튜닝"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는 몇 십만원하는 이 것을 선뜻 달아 버린다. 그 효과를 처음 체감하게 되는 것은 묵직한 저음의 배기음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는 엔진의 힘이 좋아졌든 아니든 "잘 나가겠지..." 라는 생각속에 자족하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만일에 순정 머플러와 같이 매우 조용한 배기음을 가진 튜닝 머플러를 만드는 회사가 있다면 아마도 쉽게 파산하고 말 것이다. 이런 저런 예에서 "튜닝 머플러"는 일견 "튜닝 사운드"용으로도 많이 팔리고 있다.
그렇다면 "순정 머플러"는 쓰레기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절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가 인건비 비싼 설계자들을 고용하고 고성능 머플러 개발에 태만할 이유가 없다. 한 가지 문제는, 배출가스속에 있는 황산화물, 기타 오염물질들의 산화부식과 배출가스의 압력을 오랜 시간 견딜 수 있는 재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정 머플러는 한 5만쯤 지나면 교환하셔야 되요."라는 정비기사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적이 있다. 몇 십만 킬로 이상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차들도 있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묻고 묻고 하면 끝내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죠..." 이쯤하면 메이커가 차값을 낮추기 위해서 또 부품생산업체와 머플러 달아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쉽게 부서지고 망가지는 머플러를 사용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게 된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꽁지가 빠진 채로 본의 아니게 깊은 밤 아파트단지 앞에서 '붕~붕~'거리면서 달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열이 받을 만도 하다.
그런데, 머플러 교환에 신경쓰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큰 쇠덩이 꽁무니에 달고 다니기도 싫은 사람이 내구성좋은 "순정형 튜닝머플러"를 쉽게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건 또 무슨 이유일까?
■ 꽁무니만 바라보고 서다 ■
사람의 뒷통수를 보고 그 사람의 얼굴을 정확하게 알아 맞출 수 있을까? 어깨에 스칠 듯 말듯 깔끔하게 커팅된 머리카락들, 그리고 단정하게 빗어 넘긴 뒷 모습이라면 아마도 '디카프리오' 수준의 멋진 얼굴을 갖고 있다고 상상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덥수룩하고 이리 저리 비듬을 날리는 뒷 모습이나 "깍뚜기" 머리의 뒷통수를 가진 사람은 그냥 피해가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뒤쪽의 모습이 앞쪽의 모습 이상을 말해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뒷 모습의 인상이라는 것은 막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정확하다.
86년 여름. 버스안 맨 뒷 좌석에서 살며시 안쪽이 비치는 원피스를 입은 소녀(이렇게 말하고 싶다)를 보고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따라 내린 적이 있다. 단지 뒷 모습이 그렇게도 좋아 보이는 탓에 그리고 순수한 느낌의 이상형일꺼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저... 잠깐만요..." 깜짝 놀라 뒤 돌아선 그녀의 모습에 머뭇. "동생 밥 챙겨주러 빨리 가야돼요."라는 거절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길을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바라보는 차량들의 뒷 모습은 정말로 다양하다. 범퍼가 찌그러진 차, 비뚤어진 차, 땟물이 질질 흐르는 차 등등... 비가 온 다음 날에도 신기하게 반짝거리는 차는 대부분 '사장님'을 모시는 차이겠지만 나머지는 그 만큼 차를 아끼는 사람들이거나 반년만에 세차 한번 했더다가 방금 전 소나기를 맞은 재수없는 사람들 중 하나이겠다.
하루동안 서울 시내 돌아다니는 외제차가 몇 대나 될까? 운전 중에 바라보는 외제차의 꽁무니는 국산차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일단 뒤쪽 하체부품들의 노출이 적고 머플러는 대체 어디에 붙어 있는 지 모르게 감줘져 있다. 깔끔한 뒷 인상은 '디카프리오'의 것이 아닐까? 이에 반해 값이 훨씬 싼 국산모델은 뒷 부분 하체의 볼트들까지 하나 하나 다 들어나 보인다. 물론 머플러의 모양새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당연히 국산차의 꽁무니가 들려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차이는 모델의 디자인 단계에서 정해지는 일이고 엔진을 개발하는 일 보다는 쉬운 것이니 그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신경을 덜 쓰는 탓일 수 밖에 없다. 혹시 뒷면은 설계자에게도 언제나 감춰진 존재 또는 소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이 사람은 기회가 될 때 마다 외제차의 꽁무니를 멍하니 서서 바라본다. 차를 보는 다른 시각을 갖기 위해서이다. 꽁무니가 아름다운 차는 확율적으로 앞쪽도 아름다울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앞과 뒤의 '이미지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국산모델들을 다시 평가해야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 똥차와 슈퍼카 ■
정지선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두 대의 자동차. 한쪽은 상처투성이의 '티코'이고 다른 쪽은 은빛 색깔이 찬란한 수입외제차다. 이런 장면은 흔히 보기 어렵다. 흘깃 옆눈질을 한 티코의 운전자는 잠시 긴장을 하는 눈치이더니 신호가 바뀌자 마자 마구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누가 더 빠르게 나갈 것인가?"에 대한 답변은 놀랍게도 '티코'. 수입외제차가 더 빨리 달렸을 것이라는 생각은 "값이 비싼 차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속력이 좋다" 라는 단순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수입외제차 안에는 조심스럽게 다루야하는 물건이 들어 있었는 지도 모르고 마침 운전자가 70대 고령의 할아버지였을 수도 있다.
한 밤중 산길에서 경주하는 차량 두 대(티뷰론과 튜닝 엘란트라) 사이에 낀 '티코'가 참으로 열심히 달린 적이 있다. 불행하게도 생명을 걸고 질주하는 자들의 중간에서 낀 운전자. 그 역시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패달을 밟았을 것이리라. 깊은 밤 세 대가 줄줄이 산속 고갯길을 죽기 살기로 휘저으면서 달리는 모습. 가히 진땀이 흐를 지경이다.
또 다른 한 가지. 미국에서 공부를 하던 양반이 어렵사리 장만한 일제 신형세단을 몰고 산길을 주행하고 있다. 갑자기 '꼬맹이' 자동차가 나타나 그를 추월을 해버린다. 그는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뒤를 쫒아간다. 그리고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산길을 죽기 살기로 달리다가 갑자기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순간 아차! 하는 맘에 핸들을 꺽었지만 아끼던 차는 삼거리의 방호벽을 들이 박고 대파. 물론 꼬맹이 자동차는 멋지게 이 위험한 상황을 탈출했더란다. 잠시 후, 넋이 나간 이 양반에게 앞차의 운전자가 다가와 상태를 묻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유명한 레이싱 선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동차발전 100년 역사속에서 차량주행의 원리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여전히 값비싼 연료를 태워 엔진을 구동시키고 변속기를 통해 4개의 바퀴를 굴리고 마찰을 이용해서 필요한 순간에 정지한다. 이것은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와도 같다. 이런 논리라면 슈퍼카 '람보르기니'와 '티코'가 다를 이유가 하나도 없다. 300km/h의 속도에서 정지하든 100km/h에서 정지하든 그 원리는 마찬가지다. 이는 100년간 사람들이 편안함과 안전성, 그리고 한계 스피드의 향상에만 주력을 해온 결과이다.
중요한 것은 질주본능을 가진 운전자가 낡은 '티코'를 운전하면 초고속 '슈퍼카'가 될 수 있고, 한밤 중 깊은 산속 도로에서 갑자기 슈퍼카의 시동이 꺼진다면 이것은 '똥차'가 된다는 역설적 사실이다. 좋은 차와 나쁜 차의 판단은 어떤 사람이 운전을 하는가? 어떤 여건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운전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똥차'와 '슈퍼카'의 구분은 이런 것이다. 하체의 높이가 낮은 10억원짜리 슈퍼카를 서울 뒷골목에서 몰고 다니거나 출퇴근용으로 쓰는 사람은 없으리라. 우리는 내가 타고 있는 차가 제일 좋은 "나만의 차"라는 사실을 가끔은 잊고 너무 좋은 차만을 꿈꾸며 사는 것 같다.
■ 무식한 놈 ■
"세상에서 제일 무식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많다. 이들은 정계와 재계에 주로 모여 있는 것 같다. 그 세계는 이런 사람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식"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모르는 신생아에게 이런 단어를 쓰지는 않는다. 과연 무엇을 모른다는 이야기인가? 道理에 어긋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의미이겠다.
칭찬을 받거나 또는 남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물론, 감정에 대한 숨김이 많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습관속에서는 이 즐거움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자제해야한다. "즐겁지만 내보일 수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욕구가 자꾸 쌓여감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은? 만일, 시청앞 광장에서 "나 시험에서 1등했다. 붙었다!"라고 외치는 순간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을 것이다. 방금 떨어진 놈들이 있으면 흠씬 몰매라고 맞을 수 있고, 지나가던 말 많은 노친네들의 한숨 섞인 한 말씀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Be the Red"는 겸양과 셀프 컨트롤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문화를 탈피한 한 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젊은 이들은 감정의 제어와 분출에 있어 예전 보다는 훨씬 자유스럽다. 기업체 신입사원 선발과정에서도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와 함께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에게 가점이 주어지고 있다. 점차적으로 "숨김의 문화"에서 "분출의 문화"로 사회가 전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분출의 문화". 그럼에도 과연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 뒷골목에서 조차 가속력을 자랑하듯 엑셀을 밟아야 하는가? 창문을 열고 쿵짝거리는 음악소리를 흘리고 다녀야 하는가?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자동차라는 것은 밀폐된 공간이고 주행을 하는 동안에는 타인과 직접 대면이 불가능하다는 특수성, 그리고 언제라도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도 쭉~ 내뺄 수 있다는 장점아닌 장점 때문에 무책임한 욕구분출의 도구로 애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바보"라는 애교스러운 손가락질 보다는 "무식한 놈"에게 걸맞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정말로 그리하고 싶을까?라고 생각하는 찰나에는 늘 뒷 골목 가속차량에게는 갑자기 달려들어 수 억원, 치료비로 돈이라도 뜯어 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이 한 몸 바치는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 택시와 정보백화점 ■
우리나라에서 경기변화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은? 답, 택시기사. 경기불황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일 양이면 좀 더 먼거리를 공주하게 된다고 한다. 손님없이 여기 저기 사냥감을 찾듯 돌아 다녀야한다는 이야기인데, 사납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분들 똥줄이 탈만도 하다.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사회전반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아는 분은? 답, 택시기사. 가공된 정보인 신문과 TV 등 일반 언론매체를 이용하지 않고 그저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서 일부 부정확하다고 해도 살아있는 정보들를 입수한다. 가끔은 정치인 모모씨의 성토장으로 변하는 이 택시안을 100분 토론회쯤으로 격상을 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조언은? 택시기사에게서 듣는 것이 빠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겠지만, 인생의 부침이 많았던 분들이 많고 그렇기에 이런 저런 맛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꾸벅 꾸벌 졸면서 뒷 자리에 퍼져 가는 사람, 창 밖만 응시하면서 가는 사람, 동승자와 꼭 그 순간에 별 것도 아닌 이야기로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맛난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가다가 가다가 점심시간이 되었거들랑, 근처에서 가장 푸짐하게 나오는 음식점이 어딘가 물어 보면 답이 나온다. 사실 택시기사가 가는 기사식당의 음식이 가장 푸짐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골위주로 운영되는 곳들이므로 맛내기 양념을 많이 했다거나 저질 재료를 쓰는 경우 금방 망한다. 대부분 자기 가족들 먹이는 식으로 밥을 만들고 반찬을 만들고,,, 물론 단골이 편한 만큼 깍뜻한 서비스를 기대할 수는 없겠다.
택시회사에서는 자동변속기 차량은 사납금을 조금 더 받는다고 한다. 구매시 가격은 물론이고 급출발, 급가속을 많이 해야하는 운행여건에서 고장이 잦을 수 밖에 없고 일종의 종사원에 대한 편익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댓가를 요구하는 셈이다. 통신회사, 카드회사 등 사실 돈 많이 벌고 있는 기업들에게 "통신강국"을 꿈꾸는 정부가 이런 저런 직/간접의 지원을 해 주는 마당에, 눈을 잠깐 돌려서 택시회사, 아니 택시기사들에게 좀 더 관대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펼 수는 없을까? 여기는 정보백화점인데? 여전히 이런 식이라면 공적자금에 묻어 갔을 내 돈 만원이 너무 아깝다.
■ 토종 "Drive-By" 시스템 ■
북미에 한 번쯤 다녀온 사람들은 차를 타고 커피를 주문하는 모습을 흔히 보았을 것이다. 이를 "Drive-In" 또는 "Drive-Through"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것은 커피가 워낙에 대중화되어 있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자동차 이용의 방법이 다르다는 의미도 되겠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과 같은 악천후속에서도 주문을 하고 차 안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다. 그녀까지 있다면...
국내에서는 이러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없다. 왜 그럴까? 우선 도로의 지형적인 여건이 다르다. 일단 노변 주차공간이 협소하고 비싼 땅값 때문에 차량의 원활한 진입을 유도할 만한 상가 전면의 공간을 확보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이렇게까지 커피를 주문할 만큼의 맛난 커피를 제공하는 곳이 없고 또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 그저 자판기 커피나 마시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한다거나 사업상의 목적 또는 연인간 대화를 나누기 위한 매개체로 인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차량의 이동량이 많고 사무직원들이 절대 다수일 "테헤란 벨리"에 이런 커피샵을 열었다가는 백이면 백 망하게 될 것이다.
경부선 천안역에서 기차가 잠시 정차할 때 맛보는 우동의 맛이나 달리는 기차안에서 "오징어-땅콩"을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필요할 때 즉시 사 먹을 수 있다는 야릇한 매력(?) 때문에 이용을 하게 되는 면이 없지않다. 묘한 것이다. 그 우동과 그 오징어를 집에서 먹으라고 하면 또 다른 맛이 날 수 밖에 없다. 이는 마치 경계근무를 서는 도중에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의 맛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 "궁핍"에서 맛이 난다. 물론 이런 논리라면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도 "오징어-땅콩"을 팔고 사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우수한 민족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나라에도 토종 "Drive-By" 시스템이 있다. 막히는 도로 주위를 배회하는 "오징어-땅콩" 장수들, 엿 장수들 그리고 음란비디오 파는 장수들까지,,, 그리고도 더 많다. 산모퉁이 엉뚱한 장소에 우후죽순 서 있는 수 많은 모텔들. 그야말로 한국은 (토종) "Drive-By"의 천국인가 보다.